3화 - 새로운 손님들
숲속 시장은 여느 때처럼 어둠 속에서 열렸다. 달빛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고, 기묘한 향신료 냄새가 공기 중을 떠다녔다. 시장의 상점들은 불빛을 밝히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장소는 단연 늑대 상인의 가게였다.
커다란 검은 천막 아래, 늑대 상인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천천히 시장을 훑었다.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사랑을 원했고, 어떤 이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길 원했다. 하지만 모든 계약에는 대가가 따랐다.
그때, 첫 번째 손님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후드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앉아 말을 꺼냈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싶어요.”
늑대 상인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억을 찾고 싶다면, 다른 무언가를 잃어야 한다.”
여인은 망설였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 상인은 그녀의 손을 잡았고, 순간 강한 바람이 텐트 안을 휘감았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내 동그랗게 커졌다.
“기억이… 돌아왔어요.”
그러나 그녀는 곧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혼란에 빠졌다. 거울을 본 순간, 그녀는 숨을 삼켰다. 얼굴이 낯설었다. 아니,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늑대 상인은 조용히 말했다.
“대가는 치러졌다.”
그녀가 황급히 천막을 뛰쳐나가자, 이번에는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근육질의 사내였다.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힘을 원한다.”
늑대 상인은 살짝 웃으며 물었다. “그 힘을 얻고, 무엇을 잃을 각오인가?”
사내는 주먹을 꽉 쥐었다. “무엇이든.”
늑대 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을 성립했다. 그리고 순간, 사내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는 두 손을 번쩍 들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더 강한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문을 나서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늑대 상인은 조용히 말했다.
“네가 힘을 원했듯, 이 세상도 네게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그날 밤, 늑대 상인의 시장은 평소보다 더 많은 손님들로 붐볐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계약의 대가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4화 - 사라진 영혼들
숲속 시장이 다시 열린 밤, 늑대 상인의 천막을 찾은 자들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억을 되찾은 여인은 마을로 돌아갔으나,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의심하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분명 그녀였으나, 점점 감정이 무뎌졌다. 기쁨도, 슬픔도, 두려움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그녀의 영혼 일부가 사라진 듯했다.
한편, 힘을 원했던 사내는 전보다 훨씬 강해진 몸을 가졌지만,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귀를 틀어막고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사내의 고통은 점점 극심해졌고, 급기야 그는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그의 몸이 땅에 닿는 순간, 마을의 촛불이 일제히 흔들렸다. 사람들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몸을 웅크렸다. 사내는 눈을 부릅뜨고 허공을 더듬었지만,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었다. 힘을 얻은 대가로, 그는 존재 자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마을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속삭였다. "늑대 상인과 거래한 자들은 모두 변한다…"
그날 밤, 다시 늑대 상인의 가게를 찾은 이는 한 노인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젊음을 돌려주시오.”
늑대 상인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젊음을 원한다면, 늙음을 내놓아야 하네.”
노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늑대 상인은 그의 손을 잡았고, 순간 노인의 피부가 팽팽해지며 주름이 사라졌다. 그는 다시 젊은 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가족도, 이름도, 살아온 삶도… 모든 것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노인은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낯선 몸과 이름 모를 혼란 속에서 길을 나섰다. 젊음을 얻었지만, 그것은 과거를 잃는 대가였다.
마을 사람들은 점점 깨닫기 시작했다. 늑대 상인의 계약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과 맞바꾸는 위험한 계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서 사라진 영혼들의 속삭임이 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마치 잃어버린 자들이 무언가를 경고하는 듯했다.
늑대 상인의 천막 앞에 한 여인이 섰다. 그녀는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들이… 돌아올 수는 없나요?”
늑대 상인은 잠시 침묵했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되찾고 싶다면, 새로운 거래를 해야겠지.”
담음
5화 잃어버린 것들의 속삭임, 6화 거울속의 진실과 배신자 흔적이 이어집니다.
[단편] 늑대 상인과의 계약 – 금지된 거래의 뒷이야기 (0) | 2025.0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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